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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플래너건 감독 ,애도, 종교와 공포, 시각적 감정

by 오롯한 세상 2025. 4. 25.

마이크 플래너건(Mike Flanagan)의 영화와 시리즈를 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와는 다른 무언가라는 것을. 그의 작품은 공포라는 장르의 껍데기를 쓰되, 그 안에 담긴 것은 언제나 인간의 기억, 상처, 슬픔, 그리고 치유의 서사다. '더 헌팅 오브 힐 하우스(The Haunting of Hill House)'부터 '닥터 슬립(Doctor Sleep)', '미드나잇 매스(Midnight Mass)', '더 폴 오브 더 하우스 오브 어셔(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에 이르기까지, 플래너건은 언제나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이야기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작품을 시간 순이 아닌, 정서와 주제의 궤적으로 따라가며 감독의 영화적 철학과 인터뷰, 제작 비하인드를 함께 탐색한다.

Mike Flanagan

애도: 공포의 겉옷 속에 숨은 감정들

그의 작품을 정의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애도'다. 플래너건은 단순히 관객을 놀라게 하거나 공포스럽게 만드는 데 관심이 없다. 그는 오히려 '공포는 상실의 또 다른 언어'라고 말한다. '더 헌팅 오브 힐 하우스'에서 유령은 그저 음산한 존재가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기억과 죄책감이 형상화된 결과다. 집은 공간이면서도 인물들의 트라우마 그 자체이며, 유령은 해결되지 못한 감정의 은유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슬픔을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이 어떻게 공포로 변하는지를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의 유령들은 무섭다기보다 아프다. 존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플래너건은 장르의 공식을 넘어 인간 감정의 깊이를 파고든다.

종교와 공포: 믿음과 광신, 공동체의 파괴

플래너건의 작품에서 종교는 늘 양날의 검처럼 작용한다. '미드나잇 매스(Midnight Mass)'는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종교와 인간의 구원을 다룬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작은 섬마을에 갑자기 등장한 젊은 사제와, 그 뒤에 도사린 신비로운 기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기적'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그것은 이내 믿음의 왜곡, 공동체의 광신으로 이어진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구원'이라는 단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구원은 외부에서 오는가, 아니면 내면에서 시작되는가? 그리고 믿음은 삶을 빛으로 인도하는가, 아니면 어둠 속으로 이끄는가? 플래너건은 가톨릭 신앙 안에서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시리즈'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에서 '신앙이 나를 구원하기도 했고, 나를 옭아매기도 했다'라고 말하며, 이 작품을 자기 고백적 텍스트로 여긴다. '미드나잇 매스'는 뱀파이어라는 고전적 존재를 끌어오지만, 이마저도 플래너건은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갈망의 은유로 사용한다. 종교와 공포, 개인과 집단 사이의 긴장을 그는 끝까지 놓지 않는다.

시각적 감정: 언어보다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이미지

마이크 플래너건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시각적 감정'이다. 그는 장면 하나하나에 정서를 불어넣는다. 예컨대 '더 폴 오브 더 하우스 오브 어셔'는 에드거 앨런 포의 고딕 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원작이 가진 우울하고도 비극적인 정서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플래너건은 '공포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조명, 인물의 침묵 속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극단적인 점프 스케어나 고함 대신, 긴 침묵과 고요한 공간 속에서 관객의 감정을 흔든다. 특히 그의 작품은 집, 병원, 성당 등 '공간' 자체가 인물의 감정선과 병치되어 움직인다. 촬영감독 마이클 피모그나와의 협업은 그의 미학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 카메라의 느린 패닝, 고정된 구도 안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인물의 얼굴 이런 장면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또한 그는 배우들의 감정 연기를 극도로 신뢰한다. 여러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우의 눈 안에 감정이 살아있느냐는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 결과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복합적이며, 고통스러울 만큼 현실적이다.

마이크 플래너건은 공포를 이야기하기 위해 유령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유령을 이야기하기 위해 공포라는 장르를 사용한다. 그의 작품은 어두운 숲길 같아서, 어디로 이어질지 쉽게 예측할 수 없지만,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감독이기 이전에 이야기꾼이며, 이야기꾼이기 이전에 감정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을 보며 우리는 때때로 두려움보다 더 깊은 감정, 이를테면 상실, 죄책감, 용서, 그리고 희망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마이크 플래너건은 단순히 공포영화 감독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어두운 방의 등불 같은 존재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그의 이야기 속 어둠 속에서, 인간을 볼 것이다.